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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우파 페미니즘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란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성차별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운동이고, 우파란 보통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사회적 안정을 중요시하는 사람 혹은 세력이다. 적어도 사전적 의미는 그렇다. 따라서 성차별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하며, 우파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페미니즘과 우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사실일까?
2011년, 마린 르펜이라는 여성 정치인이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당수가 되었다. 그녀는 전직 당수였던 장 마리 르펜의 딸로 사실상 정당을 계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국민전선은 각종 선거에서 무시할 수 없는 득표율을 보이며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 만약 프랑스 특유의 결선투표제가 없었다면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은 공직에 대대적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극우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의 분명한 변화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은 계승한 당수의 차이였다.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은 공수부대 장교 출신의 마초적인 이미지였다면, 그녀는 극렬한 페미니스트이다.
‘극우정당’과 ‘페미니스트’는 분명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쉽사리 정치인의 위선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린 르펜은 정말로 페미니스트다. 이미 2차례 이혼경험이 있는 젊은 변호사 출신이며 미혼모로 3명의 아이를 키워냈다. 국민전선 당론과는 상관없이 낙태를 지지하며, 고위공직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롤모델은 당연 나라를 구한 프랑스의 국민적인 영웅 잔 다르크이다. 심지어 사라 페일린이나 마돈나 같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여성들도 그녀에게 우호적이다.
그런 마린 르펜은 어째서 극우정당에 몸을 담고 있을까? 그녀는 ‘가정에서의 어머니’라는 모성을 숭배하는 보수주의자이다. 또한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원인일 이민자 문제에 관하여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녀가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이유는,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종교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위대한 프랑스’와 결합한다. 그 결과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 지지율의 절반 정도는 여성 지지층에게서 나온다.
페미니즘 제3물결을 이끌고 있다고 불리는 진보적 사회비평가인 나오미 울프는 ‘페미니스트의 얼굴을 한 파시즘(Fascism with a Feminist Face)‘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젠더를 이해할 때 위험할 수 있는 착오는, 여성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이 사회를 더 자상하고 부드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68혁명 이후 불었던 페미니즘 바람에서 사람들은 인종차별, 전쟁, 위계질서, 억압 등이 모두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 기반하고 있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여성들도 얼마든지 파시즘을 지지할 수 있다. 실제로 전쟁시기 독일에서 많은 여성들이 나치정권을 지지했다. 그녀들을 가정부나 다름없는 가정의 역할에서 해방시켜 자랑스러운 아리안인으로 만들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얼마든지 인종차별, 전쟁, 위계질서, 억압 등을 지지할 수 있다. 오히려 여성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성차별이라고까지 느껴진다.
다시, 질문을 되돌려 어떻게 우파 페미니즘은 가능할까? 분명 우파와 페미니즘은 서로 대립하며, 넘을 수 없는 벽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인 개인의 자유, 도덕주의, 가족, 자문화중시, 사회적 안정 등은 얼마든지 페미니즘이 추구할 수 있는 테제들이다. 여성의 주체성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가치들이 여성을 성차별로부터 보호해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프랑스의 마린 르펜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종교적 스카프를 착용한 이민자 출신 좌파 후보를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를 따른다며 공격하여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혹은 현재 페미니즘의 중심적인 이슈들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라면 오히려 지지를 보낼 부분들이 많다.
여기서 잠시 우파 페미니즘의 가능성이 오해받지 않았으면 한다. 절대 이러한 이유로 페미니즘은 ‘진정한 진보운동’이 아니라는 비난은 옳지 못하다. 그저 페미니즘과 여성 집단이 필연적으로 좌파일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여성들이 정치에서 더 자상하고 부드러울 것이라는 환상만큼 위험하다. 현실에서는 장애인, 환경주의자, 소수자 집단, 심지어 노동계급도 얼마든지 우파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그저 여성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가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시기상조일까? 아직 여성 집단은 정치적으로 결속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큰 변수로 볼 수는 없을까? 지금까지의 사례는 페미니즘 운동이 백년을 넘어가는 구미 선진국에만 국한되는 머나먼 이야기일까?
한번 박근혜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였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지금은 이 문장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하지만 그래도 사고실험을 시도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올해 5월 21일 토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주 화요일에 있었던 끔찍한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의 추모가 진행되는 공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같이 추모 공간에 찾아가 헌화를 하고, 그곳에 붙은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읽어본 뒤,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 서서 한국사회가 여성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사회라는 것에 국가지도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 정확히 10년 전 자신이 겪었던 피습사건의 예를 들며 피해자에게 충분히 슬픔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보수 특유의 엄벌주의로 대한민국이 여성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뒤 경찰조직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고 수사는 속도를 내서 진행되게 된다.
다른 장면도 상상해볼 수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동 지역 해외 순방 도중 독일 총리 마르켈처럼 자신도 히잡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언뜻 국가지도자로서 외교 상대국을 배려하지 않는 어려움이 생겨나지만 정상회담의 성격상 큰 문제가 되지는 못한다. 그녀는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여성차별은 반드시 근절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러한 그녀의 발언을 짐칫 비판적인 어조로 보도한다.
이런 행보를 상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 한국이 세계 성차별 지수로는 인도보다 낮은 115위에 머물고, 남녀 간 임금격차가 39%에 다다르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경력단절과 유리천장을 반드시 타파하겠다는 목소리를 낸다. 정부 산하의 여성할당제를 확대할 것을 주문하며 또한 모성보호를 위해서 자신의 대선공약대로 보육 분야의 복지를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한다. 기왕 상상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후반기 내각을 캐나다처럼 남녀비율을 동률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분명 허무맹랑하게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충분히 그럴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권력의 한계는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선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흔치 않은 여성정치인이자 국가지도자이다. 그리고 보수 세력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강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게다가 독단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행하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였다면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반응했을까 하는 부분이다. 지금처럼 계속되는 실책으로 연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보였을까? 집권세력으로서 리더십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계속되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흔히 알려진 상식으로는 선거 투표율이 낮다면, 보수에 유리하고 높다면 반대로 진보에 유리하다. 하지만 2012년도 대선 당시 높은 투표율에도 박근혜 후보자는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보통 무당층에 속해있었던 50대 이상 여성 집단에서 집단적인 투표가 나왔던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이 집단이 대규모로 투표장에 나왔었던 또 다른 선거는 최대 이변이라고 불렸던 2002년 대선 때였다. 눈에 띄는 사실은 2012년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를 보냈던 여성유권자들은 여성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분명 있었지만 이후 선거에서는 지속적으로 이탈했으며, 현재 정치변화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젊은 유권자라고 불리는 20대에서 40대까지 사이에서 투표율이 눈에 띄게 올랐는데 이를 견인한 것은 여성들의 투표율 상승이었다. 심지어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에서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을 뛰어넘는 첫 세대가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80% 이상이 정치에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투표하는 능동적 참여형 그룹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정치효용은 전반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높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친화적 정책선택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까? 그렇다면 야권은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찌되었건 박근혜 대통령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녀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의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것보다, 아버지 박정희 신화의 후속편으로 남는 것에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새누리당 역시 지지기반이 되어왔던 5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 남성을 대신해서 젊은 군필자 남성들을 지지기반으로 묶어두려 시도했지만 지금까지는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일베에서조차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의 모습을 대비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있다. 지금 진보정당에서 페미니즘이 좌파적이니 아니니, 혹은 필요하니 아니니 따지고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대통령의 역군은(亦君恩) 이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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